도피주의
SMB01의 주요 전시 ‘이스케이프’(2000)와 SMB11 《하루하루 탈출한다》(2021)를 관통하는 공통의 개념어이다. ‘이스케이프’의 공동 큐레이터였던 제레미 밀러는 『신세계 과학 소설』의 1956년 12월호에 수록된 제임스 G 발라드의 단편 소설 「이스케이프먼트」에서 시간의 혼돈을 경험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하며 새로운 미디어 공간과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경험에 주목하였다. SMB11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도처에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도피주의를 공통적으로 경험하던 시기에 개막하였다. 도록에 수록된 중국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도피주의』를 위한 서문」(1998)에서 대부분 인간의 문화를 도피주의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자연 안의 불확실성과 위협으로부터 도피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문화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 문화를 가능케 하고 지탱하고 있는 냉혹한 정치경제적 현실을 숨겨주는 아이러니를 살펴본다. 따라서 그의 도피주의가 목표로 하는 것은 외부 현실과 단절된 자기 기만적 지옥이 아니고, 동시에 삶의 가혹함과 잔인함에 편식되는 비관주의만도 아닌, 인류가 불안정하게 실현한 선(善)을 알아보게 하는 희망적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