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은 자극과 충동에 길들여진 게으른 눈과 빨리 읽어 내려는 조급증을 단번에 좌절시킨다. 그의 『고향』이라는 책을 읽어보려면, 신청서를 작성하고 송금을 한 뒤, 책이 우송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는 절차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소수의, 예의 있는 관객에게 ‘고향’이라는 개인적이고 은밀한 모티브를 던지며, 관객에게 일대일로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고향』이라는 책자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신청을 하지 않은 관객들은, 그의 센티멘털한 정서를 자극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그 궁금증을 오래 간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