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노차 수위차콘퐁의 영화는 정치적 트라우마가 마치 우리의 삶을 떠도는 유령처럼 우리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들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보여줍니다. 그녀는 작품에서 작가적 주제인 역사적 폭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대신 형이상학적 방해물처럼 영화의 세계를 관통하게 하고, 일종의 유령적 시네마를 구축합니다.
제13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 〈서사〉는 2010년 방콕에서 군부가 민주주의 시위대와 민간인들을 학살했던 사건을 다루는 가상의 재판에 관한 영화의 리허설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 15주기를 맞아 촬영된 이 작품은 태국 정부가 역사적 진실 규명을 위한 시민 참여 재판에 대한 요구를 계속 거부하는 가운데 장편 영화의 제작 장면과 목격자의 증언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며, 장기 프로젝트를 위한 일종의 스케치로서 기능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프로젝트가 가진 허구성을 드러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성찰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예술의 힘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재와 허구의 서사 모두가 그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구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일깨웁니다. ‘공적’ 역사는 바로 이러한 구조들을 은폐하기를 일삼으며, 권력에 반하는 그 어떤 목소리도 불법화하기 위해 진실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