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타 켄트(1918-1986)가 열여덟 살에 입회한 성모성심수녀회는 교육을 사명으로 삼는 수녀회였습니다. 이에 따라 코리타 수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통해 신앙적 헌신을 표현하는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그녀의 초기 판화 작업은 종교 이미지들을 복잡하게 중첩하여 구성했으나, 점차 성경 구절과 문학에서 인용한 문구들에 상업적 이미지나 노래 가사를 결합하였고, 팝아트 특유의 강렬하고 직접적인 시각 언어를 통해 사회 정의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세리그래프 작품들은 특히 1960년대의 격동기 속에서 작가의 정치적 관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폭력과 분열의 원인을 되돌아보도록 촉구합니다. 특히 1968년 수녀회를 떠나기 전후에 완성된 작품들에 새겨진 문구는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그녀가 추구한 사명의 단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피에타 1969〉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 사람들이 파괴적이기보다는 창조적인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코리타 켄트, 〈녹색 손가락〉, 1969. 세리그래프. 58 × 29 cm(액자 62 × 35 × 2 cm)
코리타 켄트, 〈화살의 심장〉, 1969. 세리그래프. 58 × 23 cm(액자 62 × 35 × 2 cm)
코리타 켄트, 〈피에타 1969〉, 1969. 세리그래프. 57 × 29 cm(액자 62 × 35 × 2 cm)
코리타 켄트, 〈시간〉, 1965. 세리그래프. 67 × 24 cm(액자 62 × 35 × 2 cm)
코리타 켄트, 〈그저 산다는 건 거룩한 것〉, 1965. 세리그래프. 33 × 22 cm(액자 62 × 35 × 2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