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계에서 더 나은 신용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미술 세계에서도 재정비된 윤리가 곧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종종 미술품의 매매가 닷컴 회사들과 같은 과정을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 커다란 거품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미술 매매상들은 이와 비슷한 비합리적인 과장으로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판다. 귀쳐지기를 원치 않는 다른 작가들은 모방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러한 시장에 먹혀드는 종류의 작품들을 생산하며 나은 미래에 대한 의심만을 더욱 확고히 했다. 새로운 디지털 현실을 향한 이러한 진보의 시점에서 나는 사진 분야에 공헌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사기성이 강한 이러한 미술의 조작된 분위기를 편하게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어 온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하는 논리가 그대로 미술계에서 전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두 세계 모두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속임수라는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피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보면, 분명 이 두 세계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속임수를 쓰는 기업가는 다른 이들을 이용해 단지 자신만의 이득을 증대시키려 한다 반면, 작가들은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즉 다른 이들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한다. 전자는 빼앗기만 할 뿐이며, 후자는 주로 이들이다.
종종 불법적인 이들을 취하기 위해 부정직한 과정을 밟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만의 매우 강력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정도 그들 역시 작가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기꾼과 같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속임수와 같은 미술이 존재한다. 긍정적인 속임수의 결과를 확인할 때 속임수 사이에 차별화를 둘 수 있다. 즉 우리는 합법적이고 비합법적인 두 종류의 속임수가 있다. 그들이 작품의 의도 내용을 알아채는 순간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한다. 디지털 사진기술 전에는 가능하지 못했던 방법들로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