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인공지능, A.I〉 프로젝트

2018
데이비드 하, 로렌 매카시, 루바 엘리엇, 마리오 클링게만, 마이크 타이카, 모두의연구소(김승일), 민세희, 스캇 켈리 & 벤 폴킹호른, 신승백 김용훈, 오스카 샤프 & 로스 구드윈, 정지훈, 진 코건, 최승준, 〈모두의 인공지능, A.I〉프로젝트, 2018. 참여작가 13명의 공동작업. 가변 크기. 프로젝트 그래픽 디자인: 김진영. 프로젝트 텍스트 번역 및 편집: 김지민.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민세희, ‘모두의 인공지능’, 2018. 데이터 시각화, 웹 기반 작품.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왼쪽 모니터) 진 코건, ‘신경 합성’, 2017. 작가 제공. 단채널 비디오, 픽셀에 그라디언트. 2분 40초.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마이크 타이카, ‘비현실 초상화’, 2017. 생성형 적대 신경망(GAN), 이미지 프린트. 가변 크기.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마이크 타이카, ‘우리, 그리고 그들’, 2018. 프린터, 생성형 적대 신경망(GAN), 의자. 가변 크기.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신승백 김용훈, ‘넌페이셜 포트레이트’, 2018. 얼굴인식 소프트웨어, 카메라, 컴퓨터, 모니터, 캔버스, 스마트폰, 테이블. 가변 크기. 참여 작가: 이윤상, 장우주, 안광휘, 윤미류, 김윤정, 홍혜인, 조유정, 이현경, 김대유, 이신아.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오스카 샤프 & 로스 구드윈, ‘선스프링’, 2016. 단채널 비디오. 9분. 제작: 엘리슨 프라이드맨, 앤드류 스웻, 앤드류 코츠샥. 총괄 제작: 엔드 큐.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오른쪽 모니터) 데이비드 하, ‘기계에게 그림 가르치기’, 2017. 디지털 인터랙티브 설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마리오 클링게만, ‘언캐니 미러’, 2018. 컴퓨터, 카메라, 스크린이 있는 리얼타임 설치.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스캇 켈리 & 벤 폴킹호른, ‘찰나의 표지판’, 2018. 나무 보드에 디지털 프린트, 빌보드. 150 × 75 cm(빌보드 3점).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 작가 제공.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좋은 삶》. 서울시립미술관. 2018. 사진: 스튜디오 수직수평(유용지+홍철기)

“모두의” 란 어떤 범위에 드는 대상의 제외함이 없는 전체를 말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영화를 추천하고, 대화를 나누며, 지금까지 경험했던 기술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 기계 환경은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주기도, 받기도, 그렇게 드러나기도, 가려지기도 하면서 모두에게 친절한 도움이 되고자 진화하고 있지만 과연 그 ‘모두’는 누구인가. 이 기계환경이 과연 ‘모두를 위한’ 기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모두의 인공지능, A.I, entirely on us〉는 인공지능의 생활적 편리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한다. 인공지능(A.I)이 인공(Artificial)이 아닌 증강된(Augmented) 지능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과연 누구의 지능이 증강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특정한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말하는 ‘모두’의 범위에 나는 속하는가. 나의 지능은 인공지능과 함께 증강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누구인가. 이 전시에 초대된 사람들은 그 ‘모두’ 에 속하는 사람들인가. ‘모두’ 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 지점이며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완전한 조건이다. 인공지능은 과연 ‘모두의’ 가 될 수 있는가.

작품

오늘
|
내일
|
스크린은 보호할 가치가 있습니다. 또는 스크린을 보호할 가치를 만듭니다.